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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 윌 비 블러드 배경과 인물의 등장 황량한 대지에서 시작된 탐욕의 서막

by rkdmf0429 2025. 8. 12.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

 

 

 

 

 

데어 윌 비 블러드: 피와 기름으로 뒤덮인 인간의 탐욕 연대기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2007년 작품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는 20세기 초 미국 서부의 황량한 유전 개발 시대를 배경으로, 석유 재벌 다니엘 플레인뷰(Daniel Plainview, 다니엘 데이 루이스 분)의 삶을 통해 인간 내면에 자리한 끝없는 탐욕과 고독을 파헤치는 서사입니다. 15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한 남자의 흥망성쇠를 집요하게 쫓아가며,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종교, 그리고 가족 관계의 본질을 날카롭게 통찰합니다. 이 영화는 원작 소설 '오일(Oil!)'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단순한 시대극을 넘어 한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피폐해져 가는지에 대한 충격적인 연구 보고서와도 같습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압도적인 연기는 이 영화의 심장을 관통하며, 관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1. 배경과 인물의 등장: 황량한 대지에서 시작된 탐욕의 서막

 

영화는 1898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메마른 땅에서 은광을 파는 다니엘 플레인뷰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다니엘은 홀로 지하 깊은 곳에서 곡괭이질을 하다가 우연히 은이 아닌 검은 기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의 얼굴과 손은 곧 기름으로 범벅이 되고, 이는 곧 그에게 찾아올 부와 파멸의 상징처럼 비칩니다. 그는 부상에도 굴하지 않고 광활한 황무지를 홀로 헤매며 석유 시추에 매달립니다. 그의 고독한 작업은 영화 초반부의 긴 침묵과 황량한 풍경 속에서 그의 강인함과 냉혹한 의지를 드러냅니다. 시간이 흘러 그는 성공적인 소규모 석유 사업가로 성장하며, 어느 날 유정 붕괴 사고로 죽은 동료의 고아 아들 H.W.를 양자로 삼게 됩니다. H.W.는 그의 사업 파트너이자 유일한 가족이 되어 함께 전국을 떠돌며 새로운 유전을 찾아 나섭니다.

어느 날, 젊은 예언자 폴 선데이(Paul Sunday)가 다니엘을 찾아와 자신의 가족이 소유한 땅, 리틀 보스턴에 석유가 솟아난다고 알려줍니다. 폴은 다니엘에게 돈을 요구하며 거래를 제안하고, 다니엘은 그의 정보를 바탕으로 리틀 보스턴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다니엘은 폴의 쌍둥이 형제이자 그 지역의 교회를 이끄는 열정적인 전도사 일라이 선데이(Eli Sunday, 폴 다노 분)를 만나게 됩니다. 일라이는 다니엘에게 유전 개발 허가를 내주는 대가로 교회 운영에 필요한 상당한 액수의 돈과 교회의 자치권을 요구합니다. 다니엘은 비록 종교를 믿지 않고, 일라이의 탐욕스러운 면모를 간파하지만, 자신의 사업적 성공을 위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리틀 보스턴에서 석유 시추 작업을 시작한 다니엘은 그의 양아들 H.W.와 함께 주민들을 설득하고, 토지를 매입하며 점차 세력을 확장해 나갑니다. 초기에는 석유 발견의 기쁨과 함께 마을 사람들과의 협상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일라이와의 갈등은 처음부터 시작됩니다. 일라이는 시추 작업의 성공을 자신의 기도 덕분이라고 주장하며 다니엘에게 더욱 노골적인 요구를 하거나, 다니엘이 성공에 집착하여 종교적인 면모를 등한시한다고 비난합니다. 다니엘은 일라이의 이중적인 모습에 분노를 느끼지만, 거대한 유전 개발이라는 목표를 위해 잠시 그의 비위를 맞춰줍니다. 이 시기, 다니엘은 뛰어난 사업 수완과 냉철한 판단력을 발휘하며 광활한 대지를 검은 황금의 땅으로 바꾸어 나갑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그의 눈빛은 점차 깊어지고, 내면의 탐욕은 더욱 단단하게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그의 야망은 단순한 부의 축적을 넘어, 모든 것을 지배하려는 지독한 소유욕으로 변질되어 갑니다.

 

 

2. 인간 내면의 고갈: 대니얼 플레인뷰의 고독한 탐욕

 

다니엘 플레인뷰의 탐욕은 단순히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관계와 감정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동반자였던 양아들 H.W.와의 관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H.W.는 유전 시추 도중 폭발 사고로 청력을 잃게 됩니다. 다니엘은 처음에 충격받은 듯 보이지만, 곧 그의 장애를 사업상의 걸림돌로 여기는 듯한 냉정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는 H.W.를 강제로 기숙학교로 보내버리며, 사실상 그를 외면합니다. H.W.의 청각적 시점에서 묘사되는 소리 없는 장면들은 다니엘의 내면 또한 소리를 잃어가듯 메마르고 고립되어감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다니엘의 인간적 고립은 가족뿐 아니라 다른 관계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헨리라는 남자는 자신이 다니엘의 이복형제라고 주장하며 그에게 접근합니다. 다니엘은 헨리에게 자신의 과거와 약점을 털어놓으며 잠시나마 인간적인 교류를 시도하고, 그와 함께 사업을 확장할 꿈을 꿉니다. 그러나 헨리는 사실 진짜 헨리가 아니라 다니엘의 옛 동료였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그는 죽은 헨리의 일기장을 통해 다니엘의 성공 스토리를 알게 되었고, 이를 이용해 접근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니엘은 극심한 배신감과 분노에 휩싸여 가짜 헨리를 살해합니다. 이 사건은 다니엘이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 자체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며, 그의 고독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니엘은 타인을 철저히 불신하고, 모든 관계를 오직 사업적 이해관계로만 판단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을 방해하거나 자신의 계획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을 제거하려 합니다. 특히 그의 경쟁사이자 후반부에는 협력 관계를 맺어야 하는 Standard Oil 사의 직원들마저도 경멸합니다. 그의 욕망은 만족할 줄 모르며, 점점 더 광폭해집니다. 심지어 그의 연기된 신앙 고백 장면은 종교 지도자인 일라이마저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는 그의 계산적인 면모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다니엘 플레인뷰는 외적으로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지만, 내적으로는 모든 인간적인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극심한 고독과 불신 속으로 깊이 침잠해가는 인물로 변모합니다. 그의 탐욕은 그를 부자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의 영혼을 완전히 고갈시킨 것입니다.

 

 

3. 종교와 자본의 대립: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충돌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인물을 통해 세속적인 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내는 동시에, 일라이 선데이 목사를 통해 타락한 종교의 위선적인 면모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영화 속에서 다니엘과 일라이는 상반된 가치관을 대변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돈과 권력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인물들로 그려집니다. 일라이는 영적인 지도자로서 사람들의 믿음을 이용하고, 기적을 내세우며 돈을 요구합니다. 그의 기도는 치료와 축복을 약속하지만, 사실상 다니엘의 석유 시추 작업이 성공하여 막대한 수입이 생기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일라이와 다니엘의 갈등은 영화 내내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다니엘이 시추 사업을 위해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일라이는 교회에 대한 헌금을 요구하고, 다니엘은 그 요구를 들어주지만 곧바로 일라이를 뺨 때리는 행동으로 그의 권위에 도전합니다. 이 폭력적인 행위는 자본의 힘이 종교적 권위를 능가하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후에 다니엘이 파이프라인 건설을 위해 반드시 일라이의 교회 소유 토지를 매입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일라이는 다니엘에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침례를 받을 것을 요구합니다. 다니엘은 내키지 않지만 사업적 이득을 위해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소리치며 자신의 믿음 없음을 고백합니다. 이 장면은 종교적인 굴복이 아니라, 철저히 비즈니스적이고 위선적인 행위로 비치며, 자본을 얻기 위해 종교적 형식마저 이용하는 다니엘의 냉정함을 보여줍니다. 이는 종교가 탐욕스러운 인간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동시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 어떤 굴욕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다니엘의 강한 의지를 드러냅니다.

일라이는 다니엘을 견제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지만, 결국 돈의 힘 앞에서 무력해집니다. 영화 후반부, 성인이 된 H.W.가 다니엘의 사업에서 독립하여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려 할 때, 다니엘은 H.W.를 "가짜"라고 칭하며 자신의 혈육이 아님을 확인 사살합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나중에 찾아온 일라이에게 다니엘은 그가 사실은 가짜 예언자이며, 그의 영혼은 탐욕으로 가득 찼다는 것을 냉혹하게 폭로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이미 근처의 모든 유전을 매입하여 일라이의 교회 소유 토지에는 더 이상 석유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그를 조롱합니다. 다니엘은 마지막으로 일라이에게 "나는 파더(아버지)다. 그리고 너는 자식(son)이다. 하지만 너는 '내' 자식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이는 종교적인 '아들'(son of God)이라는 의미와 동시에 다니엘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이러한 대사는 자본의 거대한 힘 앞에서 종교적인 영향력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종교와 자본이라는 두 거대한 세력이 서로를 이용하고 파괴하는 과정에서, 결국 살아남는 것은 가장 냉혹하고 탐욕스러운 자본의 논리임을 영화는 역설하고 있습니다.

 

 

4. 피로 물든 시대의 초상: 절망과 파멸로 향하는 끝없는 여정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한 인물의 인생을 통해 20세기 초 미국 자본주의의 폭력적이고 피폐한 본질을 그려냅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피가 흐를 것"이라는 예언은 다니엘의 삶과 그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비극적인 사건들을 관통합니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그 어떤 희생도 불사하며, 피와 폭력을 서슴지 않습니다. 가짜 헨리를 살해하는 장면은 그의 잔혹성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영화는 다니엘이 부를 쌓아가는 과정이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타인의 피를 빨아먹고 자신의 내면을 파괴해가는 잔인한 과정임을 폭로합니다.

영화의 후반부, 다니엘은 이미 모든 것을 잃은 채 거대한 저택에 홀로 고립되어 알코올 중독에 빠진 채 살아갑니다. 그는 엄청난 부를 소유했지만, 그에게는 가족도, 친구도, 심지어 진정한 안식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과거에 그가 보여주었던 활력과 야망은 모두 소멸하고, 오직 냉소와 불신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육체적으로도 그는 많이 늙고 병든 모습입니다. 그의 삶은 자신이 파냈던 유정처럼 텅 비어버렸고, 그곳에는 탐욕이 남긴 허무함만이 가득합니다.

클라이맥스 장면은 다니엘의 몰락과 파멸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성인이 된 일라이가 다니엘의 저택 볼링장으로 찾아와 그에게 사업 제안을 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일라이를 조롱하며 그를 분노하게 합니다. 다니엘은 일라이에게 "나는 당신을 끝장내겠다(I'm finished)"라고 말한 후, 그를 무자비하게 살해합니다. 이 장면은 다니엘의 광기와 폭력성의 정점을 보여주며, 그의 탐욕이 결국 자신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결과를 초래했음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마지막 대사 "I'm finished!"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다니엘이 일라이를 끝냈다는 의미와 동시에, 그 자신 또한 모든 것이 끝났다는, 파멸에 이르렀다는 고백처럼 들립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단순한 한 개인의 비극적인 삶을 넘어, 서부 개척 시대 이후 무분별한 자본주의적 탐욕이 어떻게 개인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들고,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는지에 대한 냉철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본성과 사회를 어떻게 타락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진정한 가치와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다니엘 플레인뷰의 고독하고 파멸적인 여정은 강렬한 이미지와 사운드, 그리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압도적인 연기로 관객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며, 영화를 본 후에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먹먹한 여운을 남깁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단순히 석유를 파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탐욕을 파고드는 심오한 작품입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치밀한 연출과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신들린 연기가 어우러져 한 폭의 유화 같은, 그러나 동시에 날카로운 칼날 같은 영화를 탄생시켰습니다. 물질적 성공이 가져올 수 있는 내면의 황폐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아직 이 묵직한 이야기에 빠져보지 않으셨다면, 꼭 한번 감상해 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