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하나 그리고 둘 평범한 가족 그 균열의 시작 인물 소개와 갈등의 서막

by rkdmf0429 2025. 8. 13.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영화 하나 그리고 둘

 

 

 

 

 

하나 그리고 둘: 타이베이의 일상, 그 속에 담긴 삶의 모든 면

 

에드워드 양 감독의 2000년 작 '하나 그리고 둘(一一, Yi Yi: A One and a Two)'은 현대 대만의 한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2시간 53분(혹은 3시간 가까이)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섬세한 호흡으로 가족 구성원 각자가 겪는 평범하면서도 복잡한 삶의 단면들을 그려냅니다. 감독은 화려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 대신, 일상 속 미묘한 감정의 흐름과 인물들의 내면 풍경에 집중하며, 관객에게 깊은 공감과 성찰의 시간을 선물합니다. '하나 그리고 둘'은 가족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리 삶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하게 만듭니다.

 

 

1. 평범한 가족, 그 균열의 시작: 인물 소개와 갈등의 서막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은 타이베이의 한 중산층 가족의 모습을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가족의 가장인 NJ(오념진 분)는 영화 프로듀싱 회사의 공동 대표로, 아내 민민(금연령 분), 큰딸 팅팅(켈리 리 분), 그리고 막내아들 양양(조나단 창 분)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민민의 남동생인 아디의 결혼식을 기점으로 이 가족의 삶에 드리워진 균열을 섬세하게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결혼식은 행복한 행사이지만, 그 속에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들과 인물들 간의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삶은 표면적으로는 평범해 보입니다. NJ는 사업적인 문제와 함께 학창 시절 첫사랑 셰리(신수 분)와의 재회로 인해 중년의 위기를 겪습니다. 민민은 시어머니가 혼수상태에 빠지자 삶의 무상함을 느끼고, 절에서의 수련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합니다. 팅팅은 이성 친구와의 관계에서 첫사랑의 설렘과 동시에 겪는 혼란스러움과 아픔 속에서 성장통을 겪습니다. 막내아들 양양은 학교생활에서의 어려움과 세상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사이에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영화는 이들의 관계를 엮어내면서, 각자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지만 저마다 반쪽짜리 진실을 감춘 채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독립적인 개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즉,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영화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인 '소통의 부재'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을 암시합니다. 표면적으로는 함께하지만, 깊은 내면은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우리가 타인,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조용히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이후 각 인물들이 겪게 될 개인적인 고뇌와 성장을 위한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2. 인물들의 내면 여정: 일상 속에서 찾아가는 자기 이해

 

'하나 그리고 둘'은 각 인물들이 겪는 내면의 여정을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결국 한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삶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줍니다.

가장 NJ: NJ는 사업적으로는 능력 있는 인물이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중년 남성입니다. 그는 학창 시절의 첫사랑 셰리와의 우연한 재회로 인해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봅니다. 셰리는 그에게 "왜 이제까지 나에게 편지 한 통 하지 않았냐"고 묻고, NJ는 "나는 항상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대답합니다. 이는 그가 젊은 시절 포기했던 사랑에 대한 미련과 함께,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현재의 삶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냅니다. NJ는 삶의 진실과 본질을 꿰뚫어 보는 듯한 조용하고 관조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양양에게 "우리는 보이지 않는 부분 때문에 괴로운 거야. 내가 보지 못한 곳의 뒷모습. 뒷모습의 진실을 알아야 해"라고 말하며, 삶의 이면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가족 구성원들의 갈등을 지켜보면서도 크게 개입하지 않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사유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어머니 민민: 민민은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혼수상태에 빠지자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습니다. 삶의 무상함과 허무함에 사로잡힌 그녀는 결국 스님을 찾아 절에 들어가 단기간의 수련을 감행합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의 이기심과 불만을 토로하며 자아를 성찰합니다. 민민의 여정은 현대인의 불안감과 종교를 통한 구원 욕구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녀는 절에서 "나는 나의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하며,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합니다. 비록 단기간의 수련이었지만, 이 경험은 그녀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삶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딸 팅팅: 사춘기에 접어든 팅팅은 순수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입니다. 그녀는 옆집 소년과의 풋풋한 첫사랑과 그로 인한 실연의 아픔을 겪습니다. 팅팅은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법을 배우며, 성장통을 겪어 나갑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청소년기의 성장과 사랑, 그리고 그 속에서 겪는 혼란과 깨달음을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팅팅은 자신을 둘러싼 어른들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 애씁니다.

아들 양양: 양양은 아직 어린아이지만, 그 누구보다 세상을 깊이 관찰하고 질문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의 뒷모습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찍으려 노력합니다. 양양의 사진 찍는 행위는 "진실의 반쪽은 뒷모습에 있다"는 영화의 주제 의식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싶어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진실을 포착하려 합니다. 그의 순수하고 호기심 넘치는 시선은 어른들의 복잡한 삶을 가장 본질적으로 통찰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영화는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각 개인이 겪는 고유한 내면의 성장과정을 병렬적으로 보여주며, 이는 우리 모두가 겪는 보편적인 삶의 모습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3. 에드워드 양 감독의 미학: 현실과 관조의 카메라

 

에드워드 양 감독은 '하나 그리고 둘'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영화 미학을 선보입니다. 그의 연출은 차분하고, 침착하며, 때로는 관조적이지만, 그 안에 깊은 인간적인 통찰과 비판 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느린 호흡과 깊이 있는 통찰: 영화의 긴 러닝타임은 서두르지 않는 감독의 연출 방식에서 기인합니다. 그는 극의 전개를 가쁘게 몰아치지 않고, 마치 인생의 물결처럼 자연스럽고 꾸준하게 이야기를 펼쳐 나갑니다. 이처럼 느린 호흡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색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합니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단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 속에 숨겨진 의미와 감정을 발견하게 만듭니다.

미장센과 공간의 활용: 양 감독은 섬세한 미장센을 통해 인물들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홍콩의 아파트나 상점, 사무실 등 일상적인 공간들은 인물들의 고독과 관계의 단절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정적이면서도 미묘한 움직임이 담긴 프레임은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심리를 반영합니다. 예를 들어, 창밖을 응시하는 인물들의 모습이나, 복잡한 도시 풍경 속에서 고립되어 있는 듯한 앵글은 현대인의 외로움을 상징합니다.

'비체험의 삶'과 '영화라는 마법': 영화는 '비체험의 삶'을 다룬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타인의 내면세계나 숨겨진 감정들을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감독은 이러한 '마법'을 통해 관객이 스크린 너머의 인물들과 깊이 공감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이끌어냅니다. 양양의 사진처럼, 감독의 카메라는 사람들이 보여주지 않는 '다른 반쪽'의 진실을 포착하려 합니다.

대만 사회에 대한 시선: 에드워드 양 감독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에서 대만의 역사 자체를 다루었다면, '하나 그리고 둘'에서는 대만의 현대와 현재를 배경으로 좀 더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그는 가족을 통해 급변하는 대만 사회의 모습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을 조명합니다. 비록 사적인 이야기에 집중하지만, 그 속에는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에드워드 양 감독은 차분하고 절제된 연출을 통해 인간의 삶과 관계, 그리고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며, '하나 그리고 둘'을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킵니다.

 

 

4. 삶의 순환과 진정한 이해: 소년의 성장과 성찰

 

'하나 그리고 둘'은 비록 비극적인 사건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삶의 순환과 인간의 이해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죽음을 맞이한 할머니의 영전에서 막내아들 양양이 할머니에게 읽어주는 편지로 마무리됩니다. 이 장면은 영화의 모든 감정을 집약하고, 진정한 깨달음을 선사하는 핵심적인 순간입니다.

양양은 할머니에게 "저는 아직 어리지만, 할머니는 벌써 늙었잖아요. 저 아직 모르겠어요. 제가 커가는 동안 뭘 할 수 있을지. 근데 저는 할머니가 벌써 늙었다는 사실 때문에 슬퍼요."라고 말합니다. 이는 삶의 시작과 끝, 즉 탄생과 죽음의 순환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통찰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양양은 계속해서 할머니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것들을 보러 다녔어요. 할머니, 제가 그 사람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던 것들을 봤어요. 전 할머니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어요. 제가 잘 모르는 것도 많지만, 할머니는 다 알아요. 제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것들을 봤어요. 저는 이제부터 할머니가 없는 세상에서 살 거예요. 저는 이제 알 것 같아요. 제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떤 사람과 만나게 될지."

이 편지는 양양이 단순히 어린아이가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관찰하며 얻은 깊은 지혜와 성숙함을 드러냅니다. 그는 사람들이 보여주지 않는 '뒷모습'을 보려 했고, 그 속에서 삶의 다양한 진실을 깨달았습니다. 할머니와의 이별은 양양에게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의 의미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한 가족의 일상을 통해 삶의 다양한 얼굴을 비춥니다. NJ가 경험하는 중년의 위기와 재회, 민민이 겪는 영적인 방황과 평화, 팅팅의 첫사랑과 성장통, 그리고 양양의 순수한 시선과 질문들은 우리 모두의 삶에서 마주하는 보편적인 경험들입니다. 이들은 서로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조용히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냅니다. 영화는 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야 함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보이는 것과 다른 내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불완전함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 그리고 둘'은 관객들에게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내면을 더욱 깊이 이해하려 노력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우리의 삶이 한 편의 영화처럼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그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감정들과 의미들이 담겨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이는 곧 인생 자체가 영화와 같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하나 그리고 둘'은 조용하고 섬세하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입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삶의 진정한 의미와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뛰어난 통찰력과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가 만들어낸 이 걸작은 시간을 초월하여 오래도록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을 것입니다.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과 인간적인 따뜻함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이 영화를 꼭 한번 감상해 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